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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를 위한 리터러시/<팀장의 글쓰기> 기초

05. 이건 특히 더 어려워

by Cplus.Linguist-유진 2023. 11. 23.

사회복지사가 해야 하는 글쓰기는 특히 더 어렵습니다. 창작이니까요.

 

, 그렇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야만 창작가인가요. 카메라 쓸 줄 아는 사람만 크리에이터인가요?

 

사회복지사는 창작자입니다. 사회복지사는 서비스를 만듭니다. 지역에 찰싹 달라붙는 맞춤 서비스를 만듭니다. 현실에서 살아 작동하는 서비스를 낳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새로운 서비스로 시대에 변혁을 가져다줍니다. 사회복지사가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사회복지사는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기보다 존재하지 않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발명가이어야 합니다. 서비스 운용, 전파, 개선, 폐기는 모두 창작이 발생한 다음 따라오는 절차입니다. 평시 업무는 서비스 문서에서 시작하고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복자사에게 글쓰기는 창작행위입니다. 언어는 재료이고 워드프로세서는 연장이죠. 창작은 어렵습니다. 읽고 쓸 줄 안다고 모두 창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복지사의 글쓰기는 지식을 정리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요. 지식을 만드는 지식, 메타인지는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창작은 어쩌다 얻어 걸리는 일도 아닙니다. 아주 복잡한 체계를 통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상에 나옵니다.

 

19세기부터 심리학자들은 창작을 해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형태심리학자들은 창조란 구분할 수 없는 연속적 과정이며 문제 전체를 풀기 위해 사고하는 일관된 일련의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1960년경에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형태심리학자들의 창조관은 노나카 이쿠지로의 지식창조 프로세스의 세계관과도 일치합니다. 글쓰기는 과정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글쓰기는 창작을 낳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이리도 힘든 일이 고작 일부라니...)

 

아래는 미국의 형태심리학자 제이콥 게첼스가 주장하는 창소성 개념입니다.

 

창조적 가정은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최초의 통찰 집중 숙고 해결 검증,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 순차적으로 일어납니다. 첫 번째 단계 최초의 통찰에서 해법을 알아차릴 수도 있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순서는 위 순서와 다른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검증을 받을 수 있는 상태(물품, 제안서 등)에 도달하려면 위 순서대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위 도식에서 사각형의 너비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저는 편의상 같은 넓이로 표현했지만 각 단계에서 소요되는 시간은 사례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난이도와 비용도 가변적입니다. 심리학자들간 합의되는 부분은 네 번째 단계, ‘해결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창작에서 짧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회복지계로 오면 틀린 견해가 됩니다. 사례관리는 언제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사회복지의 창작은 더 난해합니다.

 

세 번째 단계 숙고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이미 간파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글쓰기가 걱정이신 분들 중에는 숙고단계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입니다. 일단 바로 이 단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현업에서 만날 수 있는 사업계획서의 구조도 앞선 단계가 선행된 결과입니다. 상대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작업의 후순위에 속합니다. 글쓰기에는 여러 절차와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복잡한 과업이 어찌 쉽게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글을 시작하려면 !’하는 통찰의 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합니다. 창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도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상태는 글쓰기 뿐 아니라 창작의 가장 극적인 부분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글은 써야하는데 영감이 없는 상태에 놓이면 정말 난감하죠. 그래서 평소에 학습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합니다. 여러 방면에 경험을 쌓고 깊이 사고하는 삶을 살아야 영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서 숙고과정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단계 집중을 지나가야 합니다. 먼저 자료조사를 하고 배경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서적, 논문, 신문기사, 선례, 통계자료 등을 수집하고 읽어야 합니다. 필자가 직접 읽어야 합니다. AI는 읽어주지 않습니다. AI에게 세 줄 요약을 제발 주문하지 맙시다. 자료를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고 끊임없이 판단해야 뇌가 변하고 그 변한 뇌로 글을 써야 합니다. 세 줄 요약은 주인의 자격을 박탈하는 자신에게 저지르는 범죄입니다. 필자는 집중단계에서 자료를 판별하고 사용을 결정하고 서사를 두서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심지어 첫 통찰도 의심하게 되죠. 이 메모와 단상과 크로키를 시작한다면 이미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클라이언트 인터뷰, 지인의 조언, 팀장의 슈퍼바이징도 두번째 단계 집중에 속합니다. 특정 기술에 관한 부분도 여기 속합니다. 워드프로세서는 모두 잘 다루시니 원초적인 부분은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통찰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위해 R이나 SPSS 같은 통계 프로그래밍을 직접 다루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써야죠. 그런데 다룰 줄 모르면 어찌해야 하나요?

 

배워야죠. 코딩 경험이 없다면 학습이 더 어려울 겁니다. ‘집중단계에 오래 머물게 될 수 있습니다. 오래 머문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배우다 보면 뇌가 변합니다. 더 많이 보이게 되죠. 첫 번째 이전까지 내려가서 다시 살펴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멀리 돌아가는 길은 힘든 길입니다. 하지만 지나가야 한다면 가야합니다. (번역은 AI에게 맡기셔도 됩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예전에 비해 일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창작하기 참 좋은 세상입니다.)

 

, 우여곡절 끝에 숙고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합시다. 고생고생해서 왔는데 이제 시작이라니요. 이제 본격적인 사고실험을 시작합니다. 타이핑을 하다보면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전단계로 왔다갔다하며 더 격렬한 뇌폭풍이 일어납니다. 뇌폭풍은 오로지 당사자가 이겨내야 합니다. 집중단계에서는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숙고단계에 접어들면 홀로 해내야 합니다. 글쓰기 세계에는 급행열차는 없고 오로지 완행열차뿐이라는 은유를 몸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단계, ‘해결이 탈고한 순간입니다. 학생의 리터러시는 대개 여기서 끝납니다. 학생에겐 탈고가 해결이 맞습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은 다릅니다. 저는 해결이 아닌 일시 휴지(休止 )’ 단계라고 부릅니다. 후반전을 위해 잠시 쉬어갈 뿐입니다. 사회복지사가 여기서 창작이 종료한다면 아님말구같은 무책임한 태도와 다름이 없습니다. 프로페셔널은 검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 ‘검증이라는 엄중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평가를 받아야죠. 여러분은 결재권자와 클라이언트에게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나아가 후대 사회복지사에게도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사의 창작세계에서 검증기간은 최소 1년입니다. 사회복지계는 탈고하고 훌훌 털어버린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아주 엄중한 창작세계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윤리가 엄중함에 엄격함을 더합니다. 사회복지사는 베낄 수가 없습니다. 문제가 같아도 답은 다릅니다. 답이 같아도 과정이 다릅니다. 지역이 다르고 복지사가 다르고 클라이언트가 다르면 결국 글은 달라집니다. 세상에 똑같은 글은 없어요. 나만의 기획서를 향해 조심조심 나아가야죠. 슥슥 써서 금세 창조물을 만나게 될 일은 절대 없습니다.

 

재탕삼탕도 경계해야 합니다. 내 머리로 생각한 것을 내놓아야 하는데 최종제출기한이 다 될 경우, 그 동안 해왔던 사업을 조금 수정해서 내놓고 싶은 욕심이 올라옵니다. 욕심을 따라가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5개의 서비스 문서를 낳아야 하는데 4개가 전년도 혹은 퇴직한 선배의 계획서라는 것을 인정할 때 계면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재탕삼당하면 자기복제와 자기표절이 몰래붙어 들어올 수 있어요. 원래 스타일과 세계관은 변동성이 심하지 않습니다. 여간해선 바뀌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 작성해둔 글을 복붙하는 일은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될 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을 봐주어도 뒷맛이 좋지 않은 것은 변함없죠. 세상이 바뀌었는데 구형을 내놓다니요.

 

창작은 실패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애많이 썼다고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망할 수도 있습니다. 노력했지만 초라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힘들게 합니다.

 

조직에서의 창작은 더 어렵습니다. ‘어떤 것을 낳아야 하는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아무거나 낳아서는 안 됩니다. 주제는 팀장이나 필자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 내 다른 서비스와 어울려야 하고 또 사회복지법 등 각종 법과 조례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사회복지사의 창작은 경영의 시각에서 꼭 다루어져야 합니다.

 

, 자각합시다. 사회복지사가 글을 쓰는 행위가 창작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본인이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각하지 못하면, 글쓰기는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고통을 작게 만드는 방법은 사회복지사의 글쓰기가 창작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나면 기이하게도 조금 덜 힘들어요. 모두에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덜 고통스럽습니다. 함께 당하는 난리는 의외로 견딜만 합니다.

 

생각을 발전시키는 기능이 있는 글쓰기와 새로운 개념을 낳고 뿌리내려야 하는 사회복지사는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글쓰기는 몸에 한 번 하고 붙으면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런데 죽으면 기록이 남잖아요? 글쓰기는 죽어도 떨어지지 않아요.

 

쓰지 않으면, 숙고하지 않으면,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니 쓰고 싶지 않다면, 숙고하고 싶지 않다면,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직업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살벌하죠? 여러분은 프로니까요. 프로의 글쓰기는 더 어렵습니다.

 

참고문헌

내면의 그림, 우뇌로 그리기(베티 에드워즈 지음, 비즈앤비즈, 2013)

 

Vincenzo Di Giorg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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