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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자료/가라앉는 사람들13

메리, 제이미, 폴 그리고 벤 _ 아메리칸 스토리 한부모 가정은 파산 위험이 큽니다. 중산층이더라도 한부모 가정이 되면 가라앉습니다. 특히 편모가정이 제일 위험합니다. 미국에서 편모가정은 노인층, 이혼남, 소수인종, 빈민구역 거주자 보다 더 파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융위기 전에도 1년에 20만명 이상 편모가정이 파산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더 빠르고 격하게 내려갑니다. 영화 「아메리칸 스토리」는 금융위기 이후 한부모 가정의 몰락을 보여줍니다. 대침체 이후의 경제난이 일상화되는 모습을 극화했습니다. 존 휘트니 감독은 특별한 내용은 전혀 없는 미국 백인 중하층민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스포일링 할 거리가 없는 다큐 같은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1분1초 세심하게 보고 느끼고 싶은 분들에겐 스포일링일 거에요. 지금 뒤로가기 눌러 주세요. 메리는 공.. 2021. 7. 8.
송파 세 모녀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한 단독주택 지하에 일가족이 사망했습니다. 번개탄을 피워 세식구가 동반 자살했어요. 시신 옆에는 70만원이 든 봉투와 메모가 있었습니다. 60세 박모씨는 12년 전 방광암으로 고생하던 남편을 떠나보냈습니다. 이후 두 딸을 부양했습니다. 박씨는 인근 놀이공원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하지만 2014년 1월 부상을 당해 실직합니다. 두 딸이 장성한 후에도 박씨는 가장이었습니다. 35세 큰 달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어요. 당시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화가 지망생인 32세 작은 딸은 신용불량자입니다. 생활비와 언니의 병원비를 카드로 결재하다가 미납금이 불어나 파산했습니다. 만화 외주 작업으로 번 돈은 2만원 남짓. .. 2021. 7. 6.
체슬리 설리 셀린버거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구해낸 비행기 기장의 이야기입니다. 실화를 극화했습니다. 2009년 1월 15일 오후, 뉴욕을 출발해 샬럿으로 향하는 US 에어웨이즈 소속 비행기가 이륙 2분만에 새와 충돌하여 두 개의 엔진이 모두 정지합니다. 기체는 회항을 할 수 없어 뉴욕의 허드슨 강에 불시착합니다.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 총 155명은 모두 무사합니다. 기장은 체슬리 설리 셀린버거 (Chesley ‘Sully’ Sullenberger). 언론은 영웅 탄생을 알립니다. 그러나 직장에선 대접이 다릅니다. 그와 부기장은 죽일 놈입니다.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 할 수 있었는데 위험하게 강에 내려 승객을 위협했고 값비싼 비행기 전손 시켰다고 평가하며 징계하려 합니다. 두 사람은.. 2021. 6. 24.
로빈 길린저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승무원으로 25년간 일한 49세의 로빈 길린저는 근심이 가득했다. 유나이티드가 부도나기 전에 그녀는 매월 2,184달러의 연금을 받기로 약속받은 상태였다. 부도로 인한 연금 지급 유보로 연금액은 월 1,082달러로 줄어들었다. 연간으로 하면 12,984달러였다. 이는 이후에 닥칠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빈곤층 수준의 수입일 뿐이었다. 명예퇴직 대상이 되려면 아직 몇 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때에 줄어든 연금이나마 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기업합병 과정에서 연금이 사라져버렸다.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로빈 또한 만약 대상이 되더라도 명예퇴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지, 연금은 얼마나 받게 될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한때 중산층의 삶에 희망을 주었던 명예퇴.. 2021. 6. 23.
자말 뒤프리 자말 뒤프리는 40살인데 그 이상으로 늙어 보인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고, 커피라도 마실 양이면 잔을 잡은 손이 떨린다. 그의 곤경은 가슴 통증과 더불어 시작됐다. 가슴이 답답한 정도의 불편함이 아니라 진짜 통증이었다. “누가 내 가슴을 움켜쥐고 쥐어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아파본적이 없습니다. 이제 죽는가 보 다하고 생각했지요.” 기민한 한 동료가 그를 인근 내슈빌의 병원으로 급히 옮겨준 덕분에 자말은 죽지 않았다. 심장절개 수술을 한 뒤 석 달이 지나자 말은 다시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섯 달 후 그는 전기회사의 기사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다섯 달의 휴직기간은 자말에게 너무 긴 시간이었다. 아내 트리시는 중환자실 밖에서 여러 날을 보냈고, 퇴원 후에 그를 간호하.. 2021. 2. 8.
카멘과 마이크 카멘의 세 번째 임신은 어려웠다. 임신 30주가 됐을 때 그녀는 출혈을 시작했고, 산부인과 의사의 권고로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어린 게이브는 태어날 때 몸무게가 1킬로그램에도 못 미쳤고, 의사는 아이가 신체 및 인지 능력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게이브의 운명을 비극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카멘 라미레즈는 다르게 생각했다. “게이브는 신의 선물이었어요. 그는 내 기적 같은 아기입니다. 내 언니가 갑자기 죽었을 때 그 아이가 생겼어요. 나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축복을 느꼈지요.” 몇 달 뒤에도 게이브는 호흡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거의 소란을 피우지 않는 조용한 아기였다. 그러나 카멘은 그를 항상 살폈다. 어느 날 저녁.. 2021. 2. 5.
루스 앤과 제임스 루스 앤은 엘리를 임신했던 그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그때는 생활이 그녀가 계획했던 그대로 돌아가던 좋은 시절이었다. 다섯 살짜리 덱스터는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루스 앤은 늦은 오후면 덱스터를 탁아소에서 찾아서 같이 동네 수영장으로 갔다. 덱스터가 물을 헤치며 수영을 하는 동안 루스 앤은 발로 물차기를 하면서 남편 제임스가 귀갓길에 들르기를 기다렸다. 저녁식사는 늦은 시간에 대충 차려 먹었지만 상관없었다. 루스 앤의 생활은 그녀가 원했던 것, 바로 그녀가 계획했던 그대로였다. 루스 앤은 원래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그녀는 회계학을 전공했다. 회계학은 근사한 학문이고 의지할 만했으며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졸업 후 그녀는 휴스턴이나 댈러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텍사스의.. 2021. 2. 5.
존 아귀아르와 시레나 아귀아르 존 아귀아르는 걸프전 참전 군인으로, 1990년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육군 정보 분석 임무를 수행했다.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 그는 미 육군의 전설적인 정보 훈련 기지인 포트 후아추카(Fort Huachuca)에서 훈련을 받았다. 애리조나 주 남부의 외딴 곳에 위치한 비밀스런 기지에서 그는 복잡한 신호정보와 독도법을 배웠다.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존은 이라크에 파견되어 보병을 위한 정찰 정보를 제공했다. 복무 기간이 끝나자 그는 시카고로 돌아가 고교 시절 연인인 시레나와 결혼했다. 그들은 시카고 교외에 집을 샀고 거기서 딸과 아들을 낳았다. 2002년에 존은 직장이 불안정하다고 느껴 시레나의 부모가 사는 케이프코랄로 이주했다. 이주하기 전에 존은 트럭운수 업체의 중간급 관리자였.. 2021. 2. 4.
베티 디직 가장 부유한 몇몇의 노인을 제외하고는, 결국 플로리다 주 포트로더데일에 사는 베티 디직처럼 70세까지도 일하게 될 것이다.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베티는 연금을 잃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미국인처럼, 그녀는 연금이 없었으며, 401k도 없었다. 1968년에 남편이 죽은 뒤, 그녀는 아파트나 사설 저장 시설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만났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 일자리 중 어느 것에도 연금은 없었다. 그녀는 사회보장연금으로 매월 1,200달러를 받는다. 이 돈으로 보충형 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 그리고 심장병과 당뇨병 때문에 먹어야 하는 약값을 간신히 댈 수 있다. 자동차 연료비와 집세, 공공요금 등 다른 지출 .. 2021. 2. 4.
캐시 콜먼 한때는 은퇴 이후의 삶을 기대했었던 다른 수백만 명처럼, 퇴직은 이제 캐시 콜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은퇴를 기대하지 않는다. 캐시는 연장 및 금형 기술자의 딸로 미시건 주 세인트클레어쇼어스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디트로이트의 웨인 주립대학교에서 미술과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결혼하고 두 아들을 가진 뒤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시작했다. 아들들이 성장한 뒤 그녀는 이혼하고 플로리다로 이주해 보카 레이턴(Boca Raton)의 회원 전용 폴로 클럽에서 문화 및 사회분야 행사 담당자로 일했다. 그녀는 회원을 위한 콘서트를 주관하고 연사를 초빙하고, 야유회를 기획하고, 연간 예산을 짜고, 월간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클럽의 연간 행사표를 채워나갔다. 2005년에 그녀는 도미노 피자의 창립자인 톰 모나한이 플로.. 2021. 2. 4.
케빈 플래너건 직장에서의 마지막 날, 케빈 플래너건은 사무실에서 몇 개 안 되는 개인 물품들을 상자에 담아 자신의 포드 레인저 픽업트럭에 싣고 7년간 일해 왔던 건물을 떠났다. 그는 회사 주차장의 제일 아래층에 차를 세우고 앞좌석에 앉은 채로 12게이지 레밍턴 산탄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41살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살았다. 일이 해외로 옮겨 가면서 프로그래머로서 그의 경력도 끝났다. 미국의 전통적인 일자리를 해외로 내보내는 아웃소싱은 미국에서 성장하는 몇 안되는 사업이다. 케빈은 대학 교육을 받았고 어떤 일이건 열심히 했다. 그는 마지막 직장이었던 캘리포니아의 콩코드에 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를 포함하여, 샌프란시스코 만과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이전이 직장에서 우수한 경력을 .. 2021. 2. 3.
우스터시의 러버메이드 1979년 6월의 오하이오 주 우스터의 러버메이드(Rubbermaid – 미국 플라스틱 생활용품 제조업체) 공장은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하였다. 공장 내부에서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이 거대한 금형 주입 기계에 부어졌으며, 녹아서 다시 압축된 플라스틱은 여러 친숙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시계 부품이 돌아가는 것처럼 거대한 기계들은 보관함, 주방용그릇, 쓰레기통 등 가정용품들을 쏟아냈다. 반세기 가까이 그래 왔던 것처럼 하루 24시간 내내 기계들은 시끄러운 소음을 내면서 미국가정에서 사용되는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러버메이드가 그 유명한 고무 쓰레받기를 제작한 건 1920년대였다. 매우 실용적인 이 쓰레받기는 러버메이드를 가정용품 분야에서 유명 브랜드로 만들어준 첫 번째 작품이었다. 러버메이드는 여러 곳에 공장.. 2021.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