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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자료/가라앉는 사람들

루스 앤과 제임스

by Cplus.Linguist-유진 2021. 2. 5.

루스 앤은 엘리를 임신했던 그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그때는 생활이 그녀가 계획했던 그대로 돌아가던 좋은 시절이었다.

 

다섯 살짜리 덱스터는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루스 앤은 늦은 오후면 덱스터를 탁아소에서 찾아서 같이 동네 수영장으로 갔다. 덱스터가 물을 헤치며 수영을 하는 동안 루스 앤은 발로 물차기를 하면서 남편 제임스가 귀갓길에 들르기를 기다렸다. 저녁식사는 늦은 시간에 대충 차려 먹었지만 상관없었다. 루스 앤의 생활은 그녀가 원했던 것, 바로 그녀가 계획했던 그대로였다.

 

루스 앤은 원래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그녀는 회계학을 전공했다. 회계학은 근사한 학문이고 의지할 만했으며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졸업 후 그녀는 휴스턴이나 댈러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텍사스의 고향 마을 윌리로 돌아갔다. 거기서 그녀는 부모 곁에서 살면서 임금대장 작성과 소득신고 업무의 경험을 쌓았고 얼마간 저축도 하면서 늘 생각해 온 자신의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진정한 인생은 그녀가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제임스 윌슨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제임스는 윌리에 있는 카펫 및 바닥재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에게 끌린 것은 유능해 보이는 그의 손, 즉 목수다운 튼튼한 그의 손 때문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그것 말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루스 앤은 텍사스 공대 3학년 때 약혼자였던 남자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어 그와 파혼한 적이 있었다. 그와 달리 제임스는 진정한 인생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열심히 일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 같았고, 그래서 결혼상대로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둘은 짧은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했다. 1년 후인 19941월에 덱스터가 태어났다. 그리고 루스 앤은 출산 6주 뒤에 복직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루스 앤과 제임스는 함께 깊은 숨을 들이쉬고 한 단계 뛰어올랐다. 첫 자기 집을 장만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꿈꾸어 온 집보다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살 만한 집이었다. 그들은 그 집을 산 뒤 지붕을 교체해야 했고, 부엌도 50년 만에 수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집에는 적당한 크기의 방 세 개에다 넓은 마당이 있었다.

 

집값 84000달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루스 앤은 그 행복했던 이삿날을 기억한다. 삼촌과 사촌들이 이삿짐을 나르느라 왁자지껄했고, 새 집 앞마당에서는 이모가 잔칫상을 차려놓고 일꾼과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다. 그날 밤 루스 앤은 이층 욕실의 오래된 큰 욕조에 몸을 담그고 온몸으로 행복함을 만끽했다.

 

2년 후인 19999월에 축하할 일이 또 생겼다. 귀여운 계집아이 엘리가 태어난 것이다. 9주 후에 루스 앤은 복직했고, 생활은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그때 일이 터졌다. 덱스터가 여섯 살, 엘 리가 5개월 되던 1999년의 크리스마스 시즌 직후에 제임스가 다니던 가게의 주인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전국적인 대형 상점이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생겼고 거기에 엄청난 규모의 바닥재 사업부가 있어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해고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가게 주인은 판단했다. 제임스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제임스는 다른 직업을 열심히 찾았다. 루스 앤처럼 그도 그동안 쌓아온 생활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종전 임금을 맞춰 주는 일자리는 없었다. “일자리를 잃은 후 나는 온갖 일을 했습니다. 카펫 청소 같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노는 것보다는 어떤 일이라도 하는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루스 앤은 직장에서 초과근무를 신청했지만, 사무 인원은 이미 꽉 차있어 그마저 쉽지 않았다.

 

쓰는 돈을 줄이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들은 낭비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소득의 대부분은 생활의 기본적인 것들, 다시 말해 모기지 대금(주택 융자), 자동차 할부금, 탁아비, 식비 등에 지출됐다. 제임스가 실직한 지 석 달 뒤에 모기지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됐다. 그제야 그들은 그동안 가계예산을 참으로 빡빡하게 꾸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자신이 받은 청구서 대금은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고, 회계직원으로서 루스 앤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를 직접 봐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그때 상황이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제임스가 실직한 지 6개월이 지니자 모기지 대금이 두 달 치가 밀렸다. 돈을 구하기 위해 그들은 집안의 물건을 이미 두 번이나 내다팔았다. 제임스가 손질해놨던 골동품 식기세트도 팔았다. 루스앤은 가족과 이웃들에게 납세신고를 건당 단돈 50달러에 해주겠다고 슬그머니 제의하기도 했다.

 

루스 앤과 제임스가 일을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처럼. 재정파탄의 춤은 천천히 시작되지만 곧바로 속도가 빨라져 춤이 끝나기도 전에 댄서를 나가떨어지게 한다. 저축을 넉넉히 해둔 가정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한두 달 정도 만에 대개 현금이 다 떨어진다.

 

그 다음에는 식품과 휘발유를 비롯해 카드로 살 수 있는 온갖 생활 기본품목들의 대금 청구서가 쌓이기 시작한다. 달리 변통할 방도가 없으면 정말 하기 싫은 선택 게임이 시작된다.

 

모기지 대금을 낼 것 인가?

아니면 모기지 대금은 연체하고 그 돈으로 난방을 유지할 것인가?

 

자동차 보험을 취소할 것인가?

아니면 건강보험을 취소할 것인가?

 

그러는 동안 이자와 연체료가 계속 붙어 모든 요금이 더 비싸진다. 루스 앤과 제임스는 친지로부터 약간의 구제금을 지원받았다. 제임스의 부모가 4000달러를 주었고, 루스 앤의 오빠가1500달러를 빌려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시적으로 주입된 자금은 단지 몇 달 동안의 회전결제 지불액(리볼빙)만 감당할 뿐이지 탈출로를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지원받은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이미 루스 앤은 차를 회수당할 것이 걱정됐다. 은행원이 자신의 스테이션 왜건을 발견할 수 없다면 회수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차를 초등학교 뒤편에 주차하고 거기서 집까지 여섯 블록이나 걸어다녔다.

 

루스의 침실 탁상위에 꽂혀 있는 파일 폴더들은 신중하게 계획된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급작스레 풀어헤쳐졌는지를 말해주었다. 첫 번째 파일 폴더에는 납부기한이 지난 모기지 대금 청구서와,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집을 법정처분(foreclosure 은행이 집을 압류해서 강제경매신청함)하겠다고 위협하는 군청(카운티)의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다른 폴더에는 모두 12000달러에 달하는 여러 청구서들과, 루스 앤이 친지들에게 써준 약식 차용증서들이 들어 있었다. 루스 앤과 제임스에게 파국은 갑자기 들이닥쳤다.

 

어느 날 저녁 루스 앤은 거실에 들어가다가 이제 일곱 살이 된 덱스터가 전화를 걸어온 추심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거 안 해요. 아저씨는 더 이상 우리집에 전화하지 마세요. 우릴 내버려 두세요”. 엄마가 거실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덱스터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전화를 내동댕이치고 거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덱스터가 겁먹은 건진 화난 건지 분명치 않았지만, 그녀는 그런 상황이 중단돼야 함을 깨달았다.

 

루스 앤은 대부분의 다른 여자들보다 재무시식에 밝았다. 회계직원인 그녀는 이제 파산변호사를 찾아가야할 때가 됐음을 알았다. 파산신청을 하면 채무를 상환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얼마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행은 그들의 집을 적어도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처분할 수없게 될 것이다. 또한 덱스터는 더 이상 채권추심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날 밤 루스 앤은 남편에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말했다. 제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밖으로 나가 자기 픽업트럭 앞자리에 앉아 울기만 했다.

 

루스 앤과 제임스는 2001년에 북부 텍사스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출처 9~15쪽 (맞벌이의 함정』, 앨리자베스 워런 &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주익종, 필맥,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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