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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를 위한 리터러시/<팀장의 글쓰기> 기초

07. 어쩌다 잘 쓰게 되었을까

by Cplus.Linguist-유진 2023. 12. 7.

        어렵고 어려운 글쓰기, 고수를 벤치마킹해서 해결해봅시다. 프로 글쟁이는 언어학자들의 연구대상이기도 합니다. 응용언어학자들은 글쓰기 황금열쇠를 찾으려 했어요. 작가, 기자, 학자 등등 글쓰기 고수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했습니다. 마침내 비결을 찾아냈습니다!

 

퇴고, 반복’, 계속된 읽기와 쓰기의 반복, 이것이 비결이었습니다. 이 점만이 모든 글쟁이의 공통점이었습니다. 허탈하죠. 고작 이정도로는 과학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세밀한 부분은 고수마다 다르다고 하는 정도로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입니다. ‘계속 쓴다’, ‘각자만의 방식이 있다!’가 전부입니다. 실망감이 크다면 그것은 애초에 시작점을 잘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언어에는 무한한 길 밖에 없습니다. 매번 조건이 바뀌어 달라지는 것을 궁극의 공식으로 만들려는 기대 자체가 문제입니다. 담담한 태도로 학자들이 그나마 알아낸 비결 아닌 비결을 더 들여다봅시다.

 

Akhilesh Sharma @ Unsplash

 

일반적으로 고수와 달인들은 일을 쉽게 처리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나 글쓰기 고수의 모습은 스포츠 스타나 쇼프로 속 달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능숙한 방법을 숙지한 장인이기보다 노하우라고는 전혀 없는 초심자에 가깝습니다.

 

첫 문장 쓰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어떻게든 시작만 하면 술술 풀릴 것 같은데 시작이 잘 안됩니다.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에 오래 머물며 끙끙 앓는 모습이 실력이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시작을 잘 못하는 것은 글을 잘 쓸 자질이 많으신 분들이에요. 아무것도 쓰지 못해 하얀바탕 보기가 괴로운 분들은 이제부터라도 자학하지 마세요. 고수들은 글을 시작하기를 주저했어요. 백지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뜸을 들였습니다. 몸은 가만히 있지만 뇌는 정신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방향과 윤곽을 잡고 있는 중입니다.

 

의사소통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 대화의 큰 틀을 설정합니다. 듣는 사람은 조금씩 전달되는 신호를 조합해서 전체 맥락을 파악합니다. 대화의 맥락을 화자와 청자가 알아차렸다면 그 다음부터 의사소통은 술술 풀려나갑니다. 하지만 전체 윤곽을 잡지 못하고 목적없이 횡설수설하면 소통은 어려워지다 교신이 종료됩니다. 의사소통에서는 청자에게도 역할이 큽니다. 맥락을 역질문으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청자가 화자가 되는 순간이지요. 청자와 화자가 바뀔 순 있어도 소통에서 윤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바뀌지 않습니다.

 

윤곽을 잡았는가는 글쓰기에도 적용됩니다. 전체윤곽을 안다면 글쓰기는 조금 귀찮은 일일 뿐입니다. 하지만 실마리를 전혀 잡지 못했다면 글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작문에서는 도와주는 청자가 없으므로 더더욱 시작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써야 하는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다면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글쟁이 마다 교착상태를 풀기 위한 노하우가 있습니다. 메모를 끄적이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책을 짚어들기도 합니다. 술이나 차를 마시거나 운동을 하기도 하고 또 오랫동안 잠을 자기도 합니다. 세부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시작하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윤곽이 잡혔다 해도 바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시작을 주저하는 이유는 첫 문장이 나머지 문장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첫 문장은 계속 바뀌고 결국 바뀝니다. 하지만 첫 문장이라는 시작점은 항상 존재하고 존재하는 동안 늘 다른 문장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첫 문장이 바뀌면 그 다음 문장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몰비용을 생각하면 들어엎어선 안되지만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극악의 비효율이라도 선택하는 것입니다.

 

흰 종이를 땀흘리며 쳐다보던 고수는 부지불식간에 글을 시작했어요. 그 짧으면서 매번 바뀌는 순간을 아직도 알고 싶으신가요? 안타깝게도 글이 시작되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심리상태에서 어떤 인지구조로 글쓰기를 시작하는지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첫 꿈틀거림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작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지난여름 팥빙수의 몇시 방향으로 숟가락이 들어갔는지 기억하는 것만큼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팥빙수 한 그릇을 다 비웠다는 것입니다. 글을 계속 써내려 갔고 어느 틈엔가 끝이 났으며 결국 자기 손을 떠나 독자에게 갔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첫문장이 글의 인상을 결정지으니 첫 문장의 비법을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고민해보면 특정 상황에 특정 문장을 잘! 쓰는 법같은 레시피는 없다는 것을 걸 알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첫 문장을 잘 쓰는 방법이 있다면 두 번째 문장을 쓰는 방법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세 번째 문장을 쓰는 방법도 있겠군요.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계속 보따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문단을 구성하는 방법, 문단을 전개하는 방법, ‘인상적인마무리하는 법!까지 모두 있을 것입니다. 글쓰기가 어려운 만큼 일반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강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만능키는 없습니다.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뭍사람들은 고수에게 늘 만족할 만한 글이 나오는 특정공정이 있다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연구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고수들의 글쓰기 프로세스에는 구조가 없었어요. 오히려 책이나 학교에서 전해지는 방법들이 엉터리가 많습니다. 글감을 모으고 개요를 짜고 초고를 작성하고 퇴고하면 원고가 만들어 집니다. 맞는 말이지요. 다르게 표현하면 발상, 초고작성, 고쳐쓰기 그리고 원고제출도 답이 될 수 있겠군요 자, 이 루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순서에 대해 정리는 후견지명편향에 불과합니다. 일이 벌어진 다음에 내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 밉상과 다를 바가 없어요. 글쓰기는 깊게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해결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면 글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개요는 원고를 탈고 한 다음에 쓸 수 있는 요약메모 아닐까요? 개요를 짤 수 있으면 고민이 끝난 상태입니다. 생각이 끝났는데 또 뭣하러 깊이 들어가나요. 모르기 때문에, 팔짱끼고 골몰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윤곽을 잡아야 하는데 실마리도 없어서 하얀 빛만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텍스트는 얽혀있습니다. 고수는 텍스트의 본질을 알아봤습니다. 한 편의 글은 여러 요소들로 뒤엉켜있습니다. 먼저 모든 글은 문법과 표기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언어에서 법칙은 글자와 단어와 구가 얽히는 사회적 합의입니다. 합의에 따라 글자를 나열해야 하는 것은 모든 필자가 보편적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단지 문어(文語)의 기본 중 기본일 뿐입니다. 글의 내용을 결정하는 요소는 또 다른 합의에 달려있습니다. 시대배경, 가치체계, 개념체계, 맥락, 입장 등등을 고려한 엑기스가 글의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고수는 여러 요소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아차립니다. 고수는 한 숨 해결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고수는 인지(認知) 천재입니다. 천재는 배우지 않고도 잘 알죠. 순간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많지 않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자아도취가 없는 담백한 사람들입니다. 용량이 없음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간파했습니다. 고수는 꿀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수는 계속 고쳐 쓴다고 합니다. 이 점만은 모든 글쟁이의 공통점입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자기 글을 계속 편집하고 첨삭할 뿐입니다. 고수는 글과 뇌 속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끊임없이 고쳐 쓰는 사람입니다. 퇴고는 끊임없는 읽기와 쓰기이자 끊임없는 의심과 판단입니다. ‘어떻게 문단구성을 할까’, ‘시작이 아얘 잘못된 것은 아닐까’, ‘적절한 예시는 아니라서 더 찾아봐야겠는걸하며 궁리하고 또 궁리합니다. 한 번 밟으면 무릎까지 들어가는 늪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진창에 구르는 고수들의 심정이 쾌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끝날 때까지 물고 늘어지며 탈고를 마치고야 맙니다.

 

글쓰기라는 미로는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 모두 아리송합니다. 언제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들어가긴 합니다. 나오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없지만 한껏 헤매다가 나오기는 합니다. 글쓰기라는 미로는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구조로 바뀝니다. 매번 더듬으며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글 한편을 만나기 위해 필자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의심하고 조사하고 검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 또 고쳐 쓰고 고쳐 읽는 무한 퇴고 이외에는 미로를 빠져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작가들은 인상적인 퇴고사례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8번 퇴고했고 성리학의 시조 주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원전에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밖에도 고쳐쓰기한 원고만 초등학생 키높이가 되었다더라’, ‘논문 한 편 발간할 때 50번 정도 출력해서 확인한다’, ‘마지막까지 고치느라 윤전기를 멈추었다같은 이야기는 예술창작과 출판에 관한 도서에 즐비하게 담겨 있습니다.

 

고수는 한번물면 놓지 않는 똥개입니다. 글쓰기를 위해 생활도 바꿉니다. 생활을 글쓰기에 바친 사람을 전업작가라고 합니다. 부업작가에서 전업작가로의 전향은 처리할 일에 맞춰 업무방식과 생활방식 모두 바꾼 것이지요. 주객이 전도 된 것 아닐까요? 인간은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상한 동물입니다. 언어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BC1000년부터 인간세계에서는 이상할수록 존경받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초심자의 특징도 알아냈습니다. 초심자는 원고로 나아가 가는 확정된 순서를 보유했습니다. 이들의 프로세스는 명쾌하게 단순하다고 합니다. 초고작성-다시읽기-오타검열을 순차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처리합니다. 초심자는 글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한꺼번에, 단 한 숨에,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 착각을 행동에 옮깁니다. 초보는 글 전체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작업 모두를 검토하지는 않습니다. 글쓰기에 머무르는 시간이 고수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고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작업한다고 합니다. 고수와 완전 반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오히려 고수로 보입니다.

 

Christopher Lemercier @ Unsplash

 

고수에게 기대했던 능숙함은 없었습니다. 몸과 마음에서 스며나오는 끈기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습니다. 단 한번도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지난 경험이 다음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안개 속 진흙탕에서 고수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최종본을 만나기 위해 조금씩 나아갈 뿐입니다.

 

인간에게 긴 글을 낳는 생체버튼이 없습니다. 대신 대필이라는 문화버튼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누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얻어낸 글에 나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대체로 부도덕하거나 어리석거나 불법이니까요. 고수의 습성을 배운 이 시점부터는 원고를 만나는 매직을 찾지맙시다. 황금열쇠를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이 있다고 기대 자체를 하지 맙시다. 이제 편리함 중독을 끝냅시다.

 

고수를 따라합시다. 글쓰기는 다른 종목과는 다르게 고수의 행동을 바로 따라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고민인 분들은 고수처럼 쓰세요. 계속 쓰고 읽고 고쳐나가세요.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세요. 선수과목은 필요치 않습니다. 글쓰기, 알고 보면 참 쉽게 뛰어들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Expertise in second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Keith Johnson, palgrave, 2005)

2) 예술가 무엇이 두려운가(데이비드 베일즈 & 테드 올랜드 지음, 임경아 번역, 루비박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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