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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와 나

by Cplus.Linguist-유진 2020. 10. 30.

도시도 죽어요. 한 순간에 꼬꾸라집니다. 이 다큐는 기골이 장대한 도시가 한 순간에 쓰러져 폐인되는 이야기입니다.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식코를 만든 마이클 무어의 메이져 데뷔작입니다. 1988년 제네럴 모터스(General Motors, 이하 GM)의 해외이전이 지역사회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황폐화시키는지 보여줍니다.

 

로저와 나 ,  마이클 무어 감독 ,  워너브라더스 , 1989

 

GMGM대우 덕에 한국에 잘 알려졌지요. 현재는 쉐보래가 GM의 브랜드입니다. 말리부가 많이 보이더군요. GM은 캐딜락, 뷰익 등 현재는 자동차 박물관에서 위용을 뽐내는 아름다운 차들을 연달아 히트 시켰습니다.

 

GM의 고향은 미시간 주 플린트라는 도시입니다. 감독 마이클 무어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무어 감독의 아버지는 공장라인에서 33년 근무하고 은퇴한 GM인입니다. 마이클 무어를 제외한 가족들은 GM에서 일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사촌까지 GM에서 일했습니다. 무어가족은 자동차 산업이 번성하는 세례를 받으면서 자랐어요.

 

플린트는 다른 지역은 누리지 못한 부를 누렸지요. 50주년 창립기념 행사가 잘 보여줍니다. 회사의 축제는 도시의 축제였어요. 당대 최고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버라이어티 쇼가 열렸고 관악대와 문선대와 코스프레팀이 끝없이 펼쳐지는 거리 퍼레이드도 열렸습니다.

 

플린트 시내에서 고적대가 퍼레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잔치는 더이상 열리지 않습니다. 1989GM본사는 3만명이 근무하는 플린트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거든요. , 일자리 3만개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뉴스는 타지역에 있는 11개의 모든 공장도 차차 폐쇄할 예정임을 덧붙였습니다.

 

지금이야 성적이 시원찮지만 1980년대 GM은 수십억 달러의 이윤을 내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공장문을 닫았군요. 왜일까요?

 

돈 더 벌고 싶어서죠. 인건비를 줄이려 멕시코로 이전 한겁니다. 그 이윤으로 더 많은 회사를 사들이고 해외에 공장 짓고 반복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GM이 돈을 많이 벌어도 플린트 사람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마이클 무어는 GM회장 로저 스미스를 인터뷰 하려 합니다. 편지, 전화, 팩스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두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들고 직접 찾아갑니다. 본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실패. 메모 좀 남겨달라고 해도 퇴짜. GM회장이 자주 간다는 요트 클럽에도 가지만 허탕. 마이클 무어는 홍보담당자만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거절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로저 스미스를 만나기 위한 시도 사이사이에 동네가 망가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망조는 직업교육의 부재에서 시작됩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빈자리는 직업교육을 채워서 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당연히 회사나 정부가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지식을 보유하고 비전을 선도하는 조직이니까요.

 

그런데 이 플린트에는 직업교육이 없습니다. 이 세계 인물을 저 세계 사람으로 바꿀 구체적인 지식체계가 플린트에는 없습니다. 요즘 복지국가로 칭송받는 덴마크는 전환배치가 아주 잘 이루어지는 산업국입니다. 엉터리 직업교육 조차도 없어요. 기업과 정부는 직업전환에 관한 모든 것을 개인에게 전가했습니다.

 

지식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헛말들로 채워집니다. 자기계발서에 자주 듣던 이말도 저말도 아닌 뻘소리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여기 보다 더 사정이 나쁜 도시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라’, ‘도움만 바라지마라’, ‘앞만 보면서 긍정적인 생각만 하라등등 플린트 출신 연예인, 정치인, 종교인 그리고 전직 대통령까지 와서 피상적인 구호만 외치다 사라집니다. 도시 쇠락을 막기는커녕 용돈 벌고 기분전환하러 온 것 같습니다.

 

일자리가 없는데 혜택은 남아 있습니다. GM은 플린트에 극장을 지어줍니다. 유명가수들과 연예인들이 공연하는데요. 공장노동자를 증명할 뱃지와 신분증을 보여주면 50% 할인해줍니다. ~ 고맙군요.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진 곳에 직업이라 부르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만 남습니다. 인상적인 직업이 토끼 사육사. 집 뒤뜰에 케이지에서 토끼를 키워서 토끼 고기를 팔아요. 스튜용, 튀김용 구분해 놓았어요. 그녀는 능숙합니다. 토끼를 귀엽게 쓰다듬다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쳐서 즉사시키고 껍질 벗기는데 까지 떡 2! 일주일에 2~3만원 수익을 올립니다.

 

'토끼 팝니다', 애완용, 식용 모두됩니다!

 , 쇠락하는 도시에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긴합니다. 퇴거전문가입니다. 집세 밀린 사람을 쫓아내는 일입니다. 정부부서인 보안국에서 부동산 압류된 사람들에게 퇴거고지를 하고 퇴고를 이행하는 일을 민간에 하청 줍니다. GM 공장폐쇄 이후에 일이 늘었습니다. 하루 스물네 가정을 퇴거시킵니다. 다 쫓아내고 나면 경고를 하러 다닙니다. 그러면서 빈집에 누가 숨어든건 아닌지 재확인 합니다.

 

우체국도 바쁩니다. 이사간 사람들이 많아 오배송이 많다고 합니다. 주소를 바꾸는 업무가 늘었습니다. 또 주소를 바꾸지 않고 이사간 사람때문에 반송처리할 것도 넘쳐나고요.

 

공장이 핵심인 도시에 공장이 사라지니 도시는 쇠락할 수밖에요. 높은 실업율은 높은 범죄율로 이어집니다. 다큐는 총격으로 길에서 사망하는 사건현장도 보여줍니다. 높은 범죄율은 교도관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취직자리가 생겼으니 좋아할 일인가요? 새로운 교도관 중에는 GM직원도 있습니다. 감방에도 GM직원이 있습니다. 플린트에는 점점 늘어나는 범죄로 감옥이 꽉차버립니다. 감옥에 자리가 없어서 재판이 미뤄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대형 감옥을 도심에 지었습니다. 건설경기 지표가 생기니 좋아해야 하나요?

 

총격전이 벌어지는 곳에 사기는 큰 뉴스가 못되나 봅니다. 사기에 의한 퇴거가 카메라에 잠깐 잡힙니다. 한 세입자는 월세를 냈는데도 집에서 쫓겨나야 합니다. 집주인이 모기지대금을 내지 않아 은행이 집에 압류되었거든요. 아마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는 아니죠. 집주인이 수개월치 월세를 들고 야반도주 했으니까요. 단지, 망한 도시의 일상일 뿐입니다.

 

집이 없으면 길에 내앉아야죠. 길에 앉아서 어디로 갈지 고민합니다. 날씨가 춥다고 예외는 없습니다. 눈오는 날, 세입자는 가재도구와 함께 마당에 내던져져 있군요. 보안국 대리는 크리스마스라고 봐주질 않습니다.

 

크리스마스날 퇴거 당한 가족

 

GM의 역외이전하는 동안 정부는 자구책을 내놓습니다. 플린트시는 자동차 공업이 번성한 곳을 관광지로 키우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이야트 호텔, 쇼핑센터 그리고 테마파크를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이 올라가는 속도를 인식이 바뀌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미지라는 것은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장도시였던 곳에 누가 놀러가겠습니까.

 

하이야트는 파산했고 쇼핑센터는 폐쇄했습니다. 1000억을 쏟아부은 자동차 테마파크, 오토월드도 6개월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나마 있던 일자리 역시 사라졌고요.

 

대안 실패로 지역 몰락은 가속화됩니다. 빈 도시에 주인은 쥐. 야반도주하면서 버리고간 쓰레기를 평소 주예산으론 청소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쥐 다음으로 많은 건 총입니다. 경제지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나쁜 도시로 플린트를 선정합니다.

 

65년에는 8만 노동자를 수용했던 플린트. 전성기 인구수는 20만에 달했습니다. 2002년 플린트지역에서 GM에 고용된 노동자수는 5천명뿐. 인구는 8만에 못 미치는 군요. 그 중 41%가 빈곤선 아래에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미시간주 플린트 GM공장부지, 2002년 촬영 (출처: https://scalar.usc.edu/ )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70년 뉴욕타임즈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기고했어요. 15년 이후 기업은 프리드먼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죠. 인건비가 싼 나라로 제조업을 이전시켰습니다.

 

당시 기업의 이윤 추구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었어요. 기업의 이득을 보려는 행위는 선한 행위니까 정부는 막지 않았습니다. 해외이전해서 이득을 많이 볼 수 있다면 막아선 안된다는게 당시 분위기였습니다.

 

플린트는 자동차 노동조합이 출범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기업주와 정부는 노조를 원치 않았습니다. 플린트에서도 노조는 계속 약화됩니다. 자동차 제조로 유명한 디트로이트에서는 노조의 힘을 분쇄하려고 자동차 공장을 세군데로 나누어 멀찌감치 떨어뜨려서 지었어요. 디트로이트가 1970년대 말 타도시보다 먼저 급격히 쇠락하는 것이 우연은 아닙니다.

 

급격한 쇠퇴는 노동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정부, 회사, 노동자가 모두 노조를 원치 않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회사가 공장폐쇄라는 어머어머한 뉴스를 단지 통보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와 대화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소 40년 전부터 시작된 노조를 공격하는 심리전에 노조 지도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또 일본과 독일이 쫓아올 때 자신들이 만들어낸 차의 품질과 시의성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졌나요?

 

플린트 공장이 역외이전을 할 즈음에 노동자의 마음속에 노동자의 공동체는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개념이 없느냐 하면, 마지막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날, 공장직원들은 좋다고 박수를 치더군요. 일자리 해외이전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감을 못잡았던거에요. 이런 곳에서 기업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언급하거나 지역사회와 교감하는 조직체로 바라 보면 정신나간 놈으로 찍히겠죠.

 

 

일자리가 남아 있는 곳과 일자리가 떠난 곳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마이클 무어는 끝내 로저 회장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긴 만나서 무얼 하겠습니까? 이미 물은 엎어져 버렸는데요. 다큐가 만들어지는 속도 보다 도시가 망하는 속도가 떠 빠릅니다. 다른 기업들도 GM을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속편을 만들 소재는 미국 어디에나 있습니다. , 한국에도 있습니다. 2018213일 한국GM은 군산공장을 폐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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