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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논픽션

휘게 라이프

by Cplus.Linguist-유진 2019. 11. 19.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는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를 누리는 나라입니다. 이 상위랭커들 중에서 덴마크는 더 독보적입니다. <UN세계행복보고서>, <유럽사회조사>, <OECD 더 나은 삶의 지수> 등에서 자주 1등에 오릅니다. 비결을 하나 추정하자면, 이것입니다. 다른 북유럽 국가에는 없고 덴마크에만 있는 그 것 은!

 

휘게(hygge)

 

한 단어로 번역을 하기 힘드네요. 한국어도 영어도 대응하는 언어가 없습니다. 휘게는 행복감을 극대화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휘게는 건물이나 사물 또는 복지정책이 아닙니다. 사회복지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고 난 다음, 혹은 진행 중에 만날 수 있는 세계이고 문화이고 생활입니다. 휘게는 행복의 정취를 포함합니다. 단숨함, 소박함, 따뜻함, 아늑함, 느림 그리고 친밀감을 나타냅니다. 휘게는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의 요소도 쉽게 설명이 안되는데 수십가지라니, 점점 일이 커지는 군요. 아래 휘게 10계명으로 정리해봤습니다.

 

  • 분위기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한다.
  • 지금 이순 간 현재에 충실한다. 휴대전화를 끈다.
  • 달콤한 음식 커피, 초콜릿, 쿠키, 케이크, 사탕. 더 주세요.
  • 평등 - ‘보다는 우리’. 뭔가를 함께하거나 TV를 함께 시청한다.
  • 감사 만끽하라.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일지도 모른다.
  • 조화 우리는 이미 당신을 좋아한다. 당신이 무엇을 성취했든 뽐낼 필요가 없다.
  • 편안함 긴장을 풀고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가.
  • 휴전 감정 소모는 그만. 정치에 관해서라면 나중에 얘기한다.
  • 화목 추억을 나누면서 관계를 다진다.
  • 보금자리 평화롭고 안전한 장소. , 쇼파, 의자 등등

휘게는 느리고 단순한 삶입니다. 새것 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분위기와 더 가깝습니다. 한국적으로 튜닝해볼게요. 명절에 잠옷을 입고 TV 보면서 친지들과 시시덕거리면서 송편 씹는, 동호회에서 3:3 농구를 한판 때리고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한캔 원샷하는, 친구들끼리 연말부터 새해 새벽까지 3편의 영화를 연달아보면서 끊임없이 영화평하고 싱어롱하는, 이런 장면들이 바로 휘게입니다.

 

친구들에게 나홍진  3 부작으로 새해맞이 하자고 제안했는데 ,  한편도 보기 힘들다고 거절당했습니다 .

  

저자는 행복의 핵심은 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혼자서 휘게를 즐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입니다. 덴마크 정책이 의미있는 관계를 추구할 시간을 보장해주고 덴마크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최우선시합니다. 유럽인들의 60%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친구, 가족,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덴마크는 78%가 그렇게 합니다.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더 많이 접촉할수록 옥시토신 분비가 더 많이 돼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네요.

 

휘게에서 중요한 태도는 겸손함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성취에 대한 자랑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명품 롤렉스 시계를 내보이면 눈총받기 딱 좋습니다. 그것은 휘게를 그르치는 행위입니다. 더 정확히는 관계를 그르치는 행위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얀테의 법칙(‘너는 특별하지 않아)을 생활화합니다. 뽐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불편한거에요. 결국 본인도 불편하게 하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지속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 불편한 사람을 연예인병 걸렸다고 하자나요. 연예인병 걸린사람이 많은 곳에 안락함과 편안함 그리고 느긋함은 조금도 없을거 같아요.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이 디자인한 아티초크(artichoke)가 걸렸있네요

휘게는 사계절 덴마크 전역에서 계속 됩니다. 크리스마스에서 여름휴가까지, 전통있는 항구도시 뉘하운에서 수도 코펜하겐의 티볼리 공원까지, 휘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핵심적인 공간은 집니다. 71%가 집에서 휘게합니다. 그래서 집을 어떻게 꾸미는지는 초유의 관심사. 의자, 꽃병, 벽난로 등 시선 닿고 몸이 스치는 구석구석 꾸미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보이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고요. 휘게의 정취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덴마크 인들은 구석에 휘게가 있다고 느끼는거 같아요. 집안 구석에 카우치나 쇼파 이용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조명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위도가 높다보니 겨울에는 17시간 동안 해를 볼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1년에 180일 동안 비가 내리기도 하고요. 자연에서 오는 빛을 평균내면 덴마크는 칙칙한 나라에요. 조명으로 상쇄합니다. 그렇다고 무지 밝게하는 건 아니래요. 낮은 조도의 흐릿한 조명을 선호합니다. 일몰직전이나 직후의 빛을 떠올리시면 될거에요. 덴마크 인들은 생활로 들어온 빛예술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껴쓰고 아껴먹는 학생도 120만원짜리 조명을 구비한다고 합니다. 폴 헤닝센, 아르네 야콥센, 베르너 팬톤 같은 디자이너를 배출했습니다. PH램프, 클린트(Le Klint) 팬톤VP글로브 등 램프 하나하나가 예술품입니다. 양초도 많이 씁니다. 사용량도 유럽 1. 1년에 6킬로를 태운다고 합니다.

 

시공간을 채우는데 먹는 게 빠질 수 없지요. 덴마크 사람들은 스뭬아볼이라는 오픈샌드위치를 즐겨 먹습니다. 호밀빵 위에 청어 또는 레베르파스테이(leverpastej, 구운 돼지간과 돼지비계기름을 섞어만든 돼지 간 페이트스)를 얹어 먹어요. 덴마크는 양돈이 발달했어요.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많이 먹습니다. 본식 다음은 디저트. 달달한 디저트를 사랑하고 커피도 많이 마십니다. 당섭취는 유럽평균의 2배인 8.1kg이고 커피소비는 미국사람보다 33%가 높습니다. 카페휘게라는 말을 실제로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음식으로 가득차있는 일상인지라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에 관심을 쏟기 마련인데, 식문화에서 그리고 휘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음식이 더 맛있겠지요.

 

생강으로만든 쿠키 '카이만', 주로 생일케잌. 출처: https://www.scandikitchen.co.uk/

 

휘게는 동사이기도 하고요. 형용사는 휘겔리입니다. 휘게와 휘겔리를 일상생활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구글에서 레스토랑 검색시에도 할때도 휘게를 포함한 문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응용어도 많아요. 프레다스휘게(Fredagshygee)는 바쁜 한주를 보낸 후 주물에 가족들과 소파에서 TV를 시청한다는 뜻입니다. 휘게부크세르(Hyggebukser)는 밖에 서는 절대 입지 않을 너무나 편안하고 은밀한 바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휘게스나크(Hyggesnak)는 민감한 사안은 건드리지 않는 잡담을 뜻합니다.

 

다른 나라에도 휘게가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은 물론이고 휘게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어휘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허젤러흐하이트(Gezelligheid), 노르웨이는 코셀리그(Koselig), 캐나다는 호미니스(Hominess), 독일은 게뮈틀리히카이트(Gemutlichkeit) 라는 언어를 씁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복지선진국이네요. 불행을 제거하고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마련한 복지선진국은 행복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휘게에 해당하는 언어는 무엇일까요? 떠오르지 않네요. 아직 저인지(hypocognition)이군요.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명을 구입하고 오픈 샌드위치 만들고 와인잔들고 파티는 할 줄 알아요.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편안함이 자리잡히지 않을거 같아요. 갈길이 좀 멀게 느껴지네요. 우리나라는 주거부터 불안하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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