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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논픽션

아이들의 계급투쟁

by Cplus.Linguist-유진 2020. 1. 14.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유럽을 덮쳤습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아이슬란드, 키프로스가 국가부도를 맞았습니다. 미국과 적극적으로 거래한 독일, 프랑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책의 배경인 영국도 손실이 크게 입었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 할 것인가.

 

긴축.

 

2010년 노동당에게 정권을 탈환한 보수당은 세금 덜 쓰기를 선택합니다. 세금을 덜 쓴다고 한다면 무기 덜 사고 관용차 사용 줄이고 국회의원 임금 삭감허면 될텐데...보수당은 복지, 교육, 의료를 줄여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보조금을 줄였을 때 타격이 엄청납니다. 부자에게 긴축이 유치원생이 성인 남성의 따귀를 한 대 때리는 정도의 타격이라면 빈자에게 긴축은 유치원생이 성인 남성에게 따귀 한 대 맞는 것과 같은 충격이에요.

 

긴축시대에 가장 큰 피해자는 미취학 아동들입니다. 긴축시대에 무너져가는 보육현장을 영국에 정착한 일본인 이민자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 리뷰에서는 탁아소, 어린이집, 보육원, 유치원을 혼용해서 부르겠습니다.) 지역은 브라이튼.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바닷가 도시입니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무직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센터 내에 위치한 탁아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역 커뮤니티 허브에서 싱글맘, 싱글대디, 약물중독자, 아나키스트 등등 사연 많고 다양한 인종이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녀는 노동당 정부의 보육원과 보수당 정부의 보육원을 모두 경험했어요. 복지가 원활했던 시대의 탁아소를 저변 탁아소라고 부르고 복지가 축소된 시대의 탁아소를 긴축 탁아소라고 부릅니다. 몬테소리 교육은 로마 슬럼가에서 시작된 아동교육 운동입니다. 지금은 부자들의 교육기관이 되어버린 몬테소리 교육을 영국은 복지시스템의 저변으로 도입했습니다. 노동당 정부는 드넓은 인류애를 구호에 그치지 않고 생활로 만들어내는 실력자였습니다. 노동당의 영국은 0세부터 커리큘럼을 통해 발육, 인지, 정서의 차이를 줄이는 노력하는 나라였습니다.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9

긴축이 자랑스러운 저력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예산이 줄면 전문인력이 줄어듭니다. 지원이 줄어 노동력이 없어지면 남아있는 사람들의 노동강도가 심해집니다. 과로에 병을 얻어 퇴직하고 은퇴하는 보육사가 생깁니다. 적은 월급으로는 생활이 유지가 되지 않아 민간 어린이집으로 이직하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자원봉사자도 줄어듭니다. 봉사활동을 하던 생활보호대상자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복지센터에 올 시간이 없습니다. 심하게 삭감된 생활보호대상자 중에는 버스비가 없어서 외출을 삼가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학습도구인 장난감과 책도 줄어듭니다.

 

예산축소는 보육원 한 곳만 무너뜨리지 않아요. 어린이집이 속한 복지 센터 전체를 흔들어놓습니다.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고 엄마는 이민자를 위한 영어수업을 듣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강사 지원금이 사라지자 수업시수도 줄어들었어요. 영어강사와 보육사가 협업해서 엄마와 아이의 언어교육 연동하는 고급교육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적 원조가 끊긴 이 센터는 푸짐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1파운드 런치’(1천원 한식뷔페와 비슷)가 일주일에 3번만 제공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보육원 운영일이 주3, 그것도 오전에만 운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나머지 2일은 집에 있어야 했어요. 사회복지사와 보육사가 아이와 부모를 모니터링할 수 가 없지요. 아동이 폭력과 방치 그리고 결식으로 고통받는 아이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탁아소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가정은 미래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봐야하는 2일 때문에 전일제 일자리를 구할 엄두 조차 못냅니다. 건강도 나빠집니다. 수급액도 줄었는데 돈을 벌 수도 없으니 하루 1끼 밖에 못 먹습니다. 저자가 가정방문한 집은 냉장고가 텅텅비어있었어요.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식자재가 훨씬 저렴합니다. 그런데도, 대영제국의 본진에서, 21세기에, 굶는 사람이 있다니요.

 

줄어든 보조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아릅답지 않습니다. 자기나라에서 하듯 체벌하다 양육권을 박탈당하는 이민자, 1파운드 런치를 나눠먹는 세 부녀, 오로지 집세 때문에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이사가야하는 모자가정, 두 딸을 입양시킬 수 밖에 없는 아빠, 유통기한이 곧 끝나는 식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만든 길고 긴 행렬 등등 무너져내리는 영국의 저변을 구석구석 보여줍니다.

 

영국의 긴축시대를 배경으로 복지민영화의 허를 고발한 켄 로치 감독의 「 나 ,  다니엘 블레이크 」 중 한 장면. 주인공이 식품보급소에서 들어서자 허기에 이성을 잃고 캔을 들이키다 울음을 터트린다.

저자는 복지수급액이 줄었다를 수치로 표현하지 않고 에스노그라피(관찰, 개입, 인터뷰, 현지조사 등)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전합니다. 현장의 눈만이 할 수 있고 현장인이 해야할 일을 저자는 해냈습니다. 그려는 긴축이 가져다는 주는 재앙의 본모습을 전달하죠. 긴축에 혐오가 피어나는 순간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습니다.

 

긴축은 사회를 쪼개버립니다. 영국은 다문화사회이면서 계급사회입니다. 긴축이전 시대까지는 티격태격 싸우면서 어울려지내왔습니다. 싸우더라도 복지센터에 와서 얼굴 맞대고 싸웠습니다. 이제는 계급과 인종 그리고 민족들이 단절된 채로 혐오만 키우고 있습니다. 혐오는 무지가 공포를 만나 분출됩니다. 혐오는 공동체를 더 분열케 하고 더 분열된 공동체는 서로 더 혐오합니다. 그런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죠. 영국인과 이민자간의 불화 위에 백인 대 백인 혐오도 추가되었습니다.

 

부자와 중산층 백인이 가난한 백인을 혐오합니다. 복지수급을 받으면서 무직인 사람들을 차브’(chav)라고 부릅니다. 차브는 라틴어로 아이라는 뜻인데, 번역을 하면 애새끼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애새끼라고 부르면서 혐오하고 조롱하는거죠. 원래 차브의 이미지는 공영 주택지에서 살며 몰려다기 좋아하며 구걸하며 사고치는 질나쁜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문제아들과 복지수급계층에 전부를 연결시켜서 부르고 있습니다. 가난을 악마화하는 나라가 영국의 맨얼굴입니다.

 

영국사람들은 남녀차별, 장애인비하, 외국인혐오와 관련된 발언을 무의식적으로 내뱉지 않기 위해 굉장히 조심합니다. 혹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언행을 저지르면 사과하는 제스처를 분명하게 취합니다. 그런 영국 시민권자들이. 아이러니 하게도, 자국민 빈자들에겐 서슴없이 그리고 자비없이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쏟아냅니다. 언론에서도 광고에서도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보육원에서도 대놓고 이지메를 합니다.

 

이 책의 첫 사연이 차브 혐오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일하는 민간 어린이집이 폐업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동학대로 동료교사가 구속되고 이 여파로 재학생이 빠져나가면서 파산했거든요. 구속된 여성은 차브출신이었어요. 그녀는 엄마들에게 노골적인 무시를 당했다고 합니다. 저자인 일본인 이민자에게는 친절한 학부모들은 그녀는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교사가 말을 해도 학부모가 대꾸도 안하고 무시했습니다. 저자가 사는 브라이튼은 지역은 성소수자와 외국인도 존중하는 한 동네였는데 차브는 존중대상에서 예외였어요.

 

3,4세 아동은 놀다가 다치는게 일상입니다. 그 나이에는 자기밖에 모르니까 수틀리면 깨물고 때리고 찌릅니다. 집에 와서 과장되게 말하고 거짓말도 쑥내뱉습니다. 이런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의 원인을 학부모들은 차브보육사에게서 찾으려합니다. 수개월동안 클레임을 걸었어요. 그리곤 마침내 경찰이 출동했고 그녀는 체포되었죠. 재판결과는 무죄. 모두 유언비어라는게 밝혀졌습니다. 사후에라도 학부모들의 사과와 반성과 재발방지 대책마련하고 손을 맞잡는다면 추억이 될 수 있을텐데요. 아름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학부모들은 끊었고 보육원은 망했고 교사들은 잘렸습니다.

 

혐오가 내면화되면 차별이 일상이 됩니다. 저소득층의 아이까지 차별받죠. 런던시내에서 보육비를 보조 인정받는 2세 아동의 45퍼센트가 입소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불안한 가정의 아이가 보육원에 오는 걸다른 부모들이 꺼리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 경영자는 가려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이 환경을 이해해줘야하는 상황이, 영국사회에서 조성되고 있습니다. 분열은 비즈니스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혐오는 전염되요. 이민자가 백인 저소득층을 혐오합니다. 안 그래도 문화적으로 이질적이어서 잘 안섞이는 이민자와 영국인은 언론이 그리는 우악스러운 면만 보면서 혐오를 키워갑니다. 복지수급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얻은 선입견으로 가난한 영국사람을 혐오하고 멀리합니다. 긴축시대에 탁아소도 단절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복지센터의 탁아소에는 이민자의 아이만 남았어요. 하층계급 자재들이 가는 학교는 이민자들도 가지 않습니다.

 

차브 역시 가만있지 않죠. 차브는 일자리를 외국인이 가져갔다고 믿습니다. 1980년대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가 블루워커들의 일자리를 없애고 보조금을 지급하며 화이트 칼라를 위한 일자리만 만든 결과인 걸 알면서도 혐오를 위해 호도하는 것 같아요. 차브들은 이민자가 영국땅에서 모두 사라지는 꿈을 꿉니다. 평소에 투표도 안하는 사람들이 브렉시트 때는 영국의 EU탈퇴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2020년 아직도 영국은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총리는 영국의 트럼프보리스 존스. 브렉시트를 주장하고 진행시킨 장본인입니다. 현 총리는 취임 전부터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2010년 보수당은 영국이 쪼개지고(broken) 있으니 나에게 정권을 맡겨라라고 선거운동했어요. 자기들 손으로 쪼개려고 집권한 것 같아요.

 

영국 현 총리, 보리스 존슨 (출처: https://www.vox.com)

 

한국의 정부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아직 긴축을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 가난한 이민자를 언론이나 SNS의 인플루언서들이 노골적으로 악마화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긴축의 신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사회복지사가 먼저 알아차리길 바랍니다. 예민하게 모니터링하면서 한국에서 전반적으로 긴축재정이 일어나면 사회복지관에 어떤 일이 생겨날지도 그려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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