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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논픽션

청년 흙밥 보고서

by Cplus.Linguist-유진 2020. 1. 28.

젊음이 철도 씹어먹을 나이라고요? 철이 있어야 씹어먹지요. 현대 한국 청년은 철이 없어서 흙을 먹고 있네요.

 

#1 대학생 A는 유통기한에 임박해 할인하는 삼각김밥을 여러개 사서 얼려줬다가 나갈 때 하나씩 가지고 나가서 점심으로 먹는다. 무려 4년 동안 이렇게 끼니를 때웠다.
#2 대학생 B는 친구가 다 먹은 식판을 인계받아 밥과 반찬을 리필해서 먹는다. 다행이다. 리필되는 국립대에 다녀서...
#3 고시생 C는 고시원 방안에서 밥통에 밥을 해먹었다. 고시원이 정전된 날, 밥통은 전기 먹은 용의자로 지목. C는 고시원에서 쫓겨났다.
#4 지출이 많은 날, 대학생 D는 저녁을 굶는다. 과제가 많아지는 기간엔 잠까지 끊는다. 결국 독감과 위염이 겹쳐 한달을 앓았다. 그때 떨어진 면역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5 대학생 E는 일주일에 일곱끼만 먹는다. 하루 1끼인 식사도 알바 이동중에 편의점 음식을 먹는 정도. 면역력이 떨어져 매일 감기몸살과 편두통에 시달린다.

 

기가 막히죠. 한국은 청년이 기아 상태인 나라입니다.

 

변진경, 들녘, 2018

 

방세내고 학비내서 탈탈 털린 청년은 굶는 게 생존 전략입니다. 계속 굶은 순 없으니 연명 전략은 흙밥. 흙밥은 끼니가 될 만한 식사가 아닌 것들로 허기를 겨우 때우는 상황을 말합니다. 상하기 일보 직전 삼각김밥이나 커피 같은 음식으로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까요? 돈이 없어도 너무 없는 한국청년은 줄이고 줄이다 식사할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식사권을 박탈하면 건강할 권리까지 날아갑니다. 결식과 폭식을 오가는 청년은 비만하면서 저체중입니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이 발표한 2017 비만백서에 따르면 저체중초고도비만두 극단층 비율이 19~29세 구간이 가장 높았습니다. 2002년부터 10년 동안 6배 급증했습니다. ‘고콜레스테롤’, ‘신장기능 수치 이상’, ‘간기능 수치 이상이 발견되는 수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두운 신호가 들려도 청년은 병원에 안갑니다. 아니 못갑니다. 밥먹을 돈도 없는데 병원갈 돈이 있을리 없지요. 아니 병이 있는 줄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건강검진 대상에 청년은 없습니다. 만약 리스트에 청년이 들어있다해도 별수 없을 겁니다. 가난하고 바쁘니까.

 

당연한 권리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십시일밥은 공강시간에 학교식당에서 봉사활동의 대가로 받은 식권을 모아 필요한 학우에게 전달하는 벌여온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한양대 단기 프로젝트로 시작한 이 사업은 현재 29개 대학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국립대의 1000원 식사도 눈에 띕니다. 20154월 광주소재 전남대에서 처음 실시 된 1000원 식사는 2개월 뒤 서울대, 이듬해에 부산대와 충남대로 퍼져나갔습니다.

 

건강검진도 실시되고 있습니다. 전주시는 2015년부터 만 19~27세 전주시 거주 청년에게 무료 건강검진 사업을 시작했다. 매해 5000여명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경기도 고양시 보건소에서, 2017년에는 전북 무주군과 부산시가 청년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7년 서울시복지재단은 KMI한국의학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저소득 청년 100명에게 건강검진 기회를 줬어요.

 

시의적절하게 잘 지은 제목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제목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식사할 권리하나에 집중하지는 못하고 2~4장 식사권 부재의 원인(등록금, 주거비, 취업난 등)을 방만하게 흩뿌렸어요. 이 책은 시사IN 변진경 기자가 2008년부터 2018년 까지 10년간 발표한 청년에 관한 에세이를 묶은 책이에요.

 

묶은 책은 돈값을 못합니다. 인과관계 파악을 독자에게 떠넘겼으니 반값이면 차고 넘칩니다. 시사인을 구독하는 독자에겐 무료로 나눔할 수준이고요. 저자가 사망한게 아니라면 묶어서 책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창작자의 직무유기입니다. 이 책은 달필이 악서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전형입니다.

 

제목을 지키고 싶으면 에세이에서 식사에 관련된 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지방대의 식사권, 영양과 건강과 취업의 관계, 미래의 청년인 청소년의 영양상태, 식사권 박탈에 대한 정부의 인식, 관련 사회적기업과 스타트업 집중소개, 미래에 주는 영향 나아가야할 길 등 식사권 원인과 진단 그리고 해결을 처음부터 계획하여 밀고 올라가야 합니다.

 

다시 쓰지 않고 상품성을 유지하고 싶으면 제목을 바꿉시다. 현대 한국 청년 고난사. 그러면 독자군이 바뀌겠지요? 청년의 상황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기성세대에게 권하면 알맞은 책이 됩니다. 그런데...제목을 바꿔도 고민이 생기네요. 관련도서는 이미 많이 출간되지 않았나요? 유투버로 활동하는 시민 저널리스트와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컨텐츠인가요? 유투브를 통해 세상 돌가는 걸 파악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 정보인가요? 유투브 시대에 책은 왜 그리고 어떤 상태로 존재해야하는지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1장에서 바로 5장으로 넘어갑시다. 5장은 식사권 회복에 관한 한 가지 대안인, 청년수당 지급을 말합니다. 청년은 경제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식사권부터 회복합니다. 밥버거에서 뼈해장국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취업성공이 더 근본적이지만 취업난에 취업을 하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지요. 2017213일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청년들의 취업과 창업에 따르면 18~29세 청년 취업 경험자 가운데 정규직으로 일해본 사람은 7%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청년수당이 유일한 답입니다.

 

청년을 구호대상에 넣은 NGO가 활동하고 있는 현재, 청년은 복지대상입니다. 지역복지관에서 청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언가요? 청년수당과 연계해서 펼칠 서비스는 무엇이 있나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청년용 식사권 보장 서비스는 무엇이 있나요? 미래 그리고 현재 이야기 모두 들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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