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도서/논픽션

쫓겨난 사람들

by Cplus.Linguist-유진 2020. 5. 7.

미국사람은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납니다. 온갖 시덥지 않은 이유로 쫓겨나는 세입자가 수백만입니다. 변기가 막혔다고, 아이가 말썽부린다고, 층간소음 일으킨다고, 부부싸움 시끄럽다고, 집수리비 많이 나온다고! 인권이 버젓히 무시되는 미국에선 세간살이가 마당에 내던져 지는 사람이 수백만입니다.

 

이 책은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배경은 미국중부 위스콘신주의 주도인 밀워키. 미국에서 4번째로 가난한 도시인 밀워키에서 벌어지는 퇴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메튜 데스몬드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 2016

저자인 하버드 사회학교 교수 매튜 데스몬드는 질문했습니다.

 

퇴거는 얼마나 현저한가? 그 결과는 무엇인가? 퇴거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난한 가족들이 집을 빼앗기면 어디로 가게 될까?”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답하는 연구와 데이터는 없었습니다. 식상해 보이는 주제인 주거빈곤은 퇴거라는 렌즈로 보니 사실 완전히 새로운 주제 였습니다. 대개의 연구는 젠트리피케이션, 공공주택, 노인주택, 인종별 거주지구분 등에만 치우쳐 있었어요. “수년동안 사회과학자, 언론인, 정책입안가 거의 모두가 퇴거 문제를 외면했습니다.

 

저자는 공공주택이 아닌 민간주택시장을 주목합니다. 집주인에게 직접 집을 구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민간주택을 이용하니까요. 당연해 보이지만 역시 사전 연구는 없습니다. 빈곤과 주거 연구에 관한 관습은 민간주택시장에서 빈자들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으려했습니다. 맹점이 넓어도 너무 넓었습니다. 퇴거를 외면하니 가난한 아이들이 왜 이사를 많이 하는지도 몰랐던거에요. 퇴거를 빼면 부의 양과 이사횟수는 상관이 없어집니다. 비공식 퇴거를 포함하지 않은 추정치는 도시의 위기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습니다.

 

퇴거에 관한 통계 봅시다. 조사지역은 미국의 중북부의 위스콘신의 주도인 밀워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밀워키에서 가장 가난한 세입자들이 했던 이사의 약 4분의 1이 비자발적이었습니다. 비자발적이라는 말은 보안관, 깡패, 이사짐 센터 직원이 와서 세간을 들어내서 마당에 쌓아두거나 창고로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밀워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가장 심한 지역은 뉴욕. 2012년 뉴욕시 법원은 매일 역 80건의 임대료 미납 퇴거 사건이 통과되었습니다. 시카고 보다는 6, 클리브랜드보다는 9배 많은 수치입니다.

 

퇴거는 가난의 원인이면서 결과입니다. 퇴거를 당한지 1년이 지난 가족들은 퇴거 경험이 없는 유사한 가족들과 비교했을 때 물질적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20퍼센트 높습니다. 가난의 개념은 꼭 필요한 것이 없어 정신에 타격을 입는 상태를 말합니다. 퇴거경험이 있으면 우울증도 더 많이 앓습니다. 퇴거 세입자 두명 중 한명이 우울증 증세가 나타납니다. 정신건강악화의 끝은 자살이죠. 퇴거와 압류로 인한 자살은 주택비용이 치솟은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세입자가 갈 곳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노숙자 쉼터로 가거나 친지나 친구에게 얹혀 지내면서 다음 거주지를 물색합니다. 발품 팔며 따져보지만 수렁에서 수렁으로 이동일 뿐. 퇴거 기록이 있는 세입자는 공공주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공공주택도 상태가 좋진 않아요.) 각종 주거복지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고 퇴거전력은 민간주택시장의 집주인에게도 거부당하기 일쑤입니다. 이들이 갈 곳은 우범지대 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기준미달 주택도 감지덕지. 퇴거기록이 있는 세입자는 손발 다 비비며 사정해야 합니다.

 

퇴거냐 기준미달 주택이냐...미래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습기와 곰팡이 그리고 과밀이 우울증을 유발합니다. 자기 집을 혐오하고 통제할 수 없음을 느끼고 소득 대부분을 집에 털어넣어야 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았습니다. 퇴거를 경험한 노동자가 해고당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5%가 높습니다. 나쁜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염되죠. 게토의 아이들은 건강과 학습 능력 그리고 자존감까지 떨어집니다. 퇴거 경험이 있는 많은 아이들이 결국 노숙자가 됩니다.

 

미국도 주거 복지제도가 있긴 있습니다. 1980년 레이건 정부 이래로 계속 자금이 줄다가 금융위기 이후로는 거의 말라버렸습니다. 2013년 가난한 세입자 가운데서 임대료 규제 주택에 사는 비중은 1퍼센트뿐이었고 무려 67퍼센트가 연방의 보조를 받지 못했습니다. 정부 보조의 부족과 임대료 및 공과금 상승 그리고 소득 침체까지 더해지니 대부분 임차가정 수입의 70-80%가 임대료로 나갑니다. 식료품 구매권까지 깡을 해서 임대료 보태야 합니다. 퇴거는 빈곤을 낳고 착취가 창궐하게 합니다.

 

퇴거를 막는 방법 중 하나는 불법퇴거에 내몰린 임차인에게 변호사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입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밀워키에서는 1300여 세대의 법률원조를 제공하여 86퍼센트 승소를 얻어냈습니다. 45만달러를 소송보조금으로 써서 75만불의 노숙자쉼터 비용을 절약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택바우처 프로그램을 크게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어 공공주택과 세금공제, 내집 장만 프로그램이나 개발업자 인센티브 제도를 권합니다.

 

지금까지 이 내용은 에필로그를 정리한 것입니다. 25, 전체의 5% 정도 분량을 정리했습니다. 퇴거의 윤곽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의 에필로그만 읽어보면 됩니다. 주거 빈곤에 대한 감잡기 용으로 딱 숫자와 양상만 취해야 한다면 이 리뷰만으로도 충분할 거에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가난에 끼어서 죽어가는 하층민을 볼 수가 없습니다. 퇴거를 중심으로 가난을 알 수가 없습니다. 숫자 넘고 구조 안으로 들어가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95%가 산문으로 쓰여 있고 문체가 독보적인 사회과학 서정시.

 

초기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 오세아니아의 섬에서 몇 년씩 거주하며 익혀가듯, 하버드 교수는 연구실과 중산층이 모여 사는 교외주택을 나와 밀워키의 빈자들의 장소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20085월 부터 200910월까지 남쪽의 트레일러 단지와 북쪽의 슬럼가에서 직접 세를 들어 살았습니다. 그의 관찰과 접촉은 진중하고 세밀합니다. 여덟 가구와 관련자들을 세심하게 관찰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디는 따라갔죠. 트레일러 단지부터 퇴거법정 그리고 일터와 병원까지 따라다니며 퇴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했습니다. 감정이입으로 인해 본인의 가슴도 황폐해져갔지만 그는 고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문화기술지(에스노그라피 또는 민속지)100m선수가 결승점에 통과하는 순간을 측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퇴거는 딱 그 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퇴거의 전조, 퇴거 통보, 퇴거 집행 직전, 퇴거 집행 중, 퇴거 직후가 연속된 그림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음 살 집을 구하기 위한 길고 긴 시도 역시 긴 숨으로 보아야 담을 수 있었죠. 책에 등장하는 퇴거가정은 거의 100번을 시도해서 아이가 없다’, ‘미혼이다’, ‘혼자산다등 구라를 살짝 섞어야 겨우 집을 구할 수 있죠.

 

가난의 일부를 고립해서 보지 않고 가난에 대해알기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와 격리된 것처럼 여기고 묘사한 저널리즘을 지적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동떨어진 삶을 사는 외계인으로 여기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런 시각은 민간과 시장이 교류한다는 것을 보질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의 집필 방식은 이에 대한 반향이죠.

 

나는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장소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은 가난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모두 얽혀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난을 이해하려면 그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상호 의존성과 상호 투쟁으로 묶여 있는 과정을 찾아 나선다.”

 

이 책은 좋은 글’, ‘잘 쓴 글의 전형입니다. 추천사를 쓴 사회학자 조은은 글을 잘 쓰는 비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문화기술지가 현장 묘사(description)나 기술(technique)의 영역이 아닐뿐더러 글 쓰는 일이 문장력이나 글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연구자의 문제의식과 윤리의식이 손을 대면 베일 듯 선명하다.”

 

글발은 머리와 가슴에서 손으로 전해집니다. 문제의식과 윤리의식이 태도, 방법 그리고 실천을 낳고 그 끝에 명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사회복지사의 길을 걸은 여러분에겐 명필의 DNA가 이미 있습니다. 발견하고 스스로 깨우치는 그 날이 기다리고 있어요.

 

저자는 언어에 능숙하지만 펜이 만능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저자의 문화기술지 실천은 모범 그 자체이지만 에스노그라피가 전지전능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보았지만 내가 보았다 그러니 믿어라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를 내려놓고 3인칭으로 서술합니다. 여기에 최종 작업으로 퇴거를 완전히 드러냅니다.

 

퇴거에 관한 연구는 예리한 관찰자의 눈 그 이상이 필요했습니다. 위에 언급했든 사전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별도의 조사가 동반되어야 했죠. 저자는 맥아더재단이 지원을 받아 위스콘신대학교 설문조사센터와 함께 민간주택 부문에 있는 세입자에 대한 설문조사, <밀워키 지역 세입자 연구 Milwaukee Area Renters Sturdy,MARS>를 수행합니다. 대학과 저자의 감독아래 전문조사위원들이 1100명의 세입자를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게토를 누비다 강도를 당한 조사원도 있었지만 데이터 수집은 성공적이었죠. 여기에 <밀워키 퇴거법연구> 설문조사가 더해져 연구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런 책은 절대 혼자 쓸 수 없습니다. 훌륭한 개인에게 사회의 지식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글쓰기라는 캡슐을 열어보면 우리가 알던 글을 쓰는 행위는 예상보다 지분이 적습니다. 출판계가 보여주는 작가의 신비로운 모습은 사실 과장된 것이죠. 글쓰기 안에는 조사가 의외로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례가 없는 사안을 알아내야 할 때 조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복지관 주도로 지역만의 문제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조사를 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연구조사는 사회복지 글쟁이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난의 구조를 더 선명하게 보고 싶다면, ‘구조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게 대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정독하세요! 글쓰기에 골몰하는 사회복지 글쟁이, 다른 각도로 사례연구 기록을 시도하는 사회복지사에게 권합니다. 관찰대상의 구조도 드러내며 나만의 문체까지 새겨 넣고 싶은 글쟁이들에게 강력추천합니다.

'추천 도서 > 논픽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후파산  (0) 2020.09.02
노인지옥  (0) 2020.06.18
인간증발  (0) 2020.04.12
청년 흙밥 보고서  (0) 2020.01.28
아이들의 계급투쟁  (0) 2020.01.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