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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논픽션

가족의 파산

by Cplus.Linguist-유진 2020. 9. 9.

장수는 재앙이에요. 가족은 리스크고요. 불편하지만 현실입니다. 초고령화 사회의 본모습입니다.

 

가족의 파산, NHK 스페셜 제작팀, 홍성민 옮김, 동녘, 2017

 

연금만으로 연명하는 상태에서 의료나 요양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면 노후파산 당한겁니다. 생활보호 대상자에도 오르지 못하고 저축액도 거의 고갈 상태에 빠진 노인은 기본권 이하의 삶을 살다 비참하게 죽을 것입니다. 사회보장비가 점점 줄어가는 추세라서 저축액이 지금은 충분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주변인 다 떠나고 독거노인이 되면 비극을 피할 수 없습니다.

 

노후파산은 한 인간이 파산에 이를 때까지 제대로 된 버팀목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사회적인 장치는 물론이고 가족이라는 안전지대가 파산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가정에 노인 한명이 파산할 정도면 가족도 결국 망합니다. 노인과 자식이 같이 망하는 파산을 친자파산이라고 부릅니다. 친자파산은 중류층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일본 NHK 방송국이 2015년 친자 파산을 이슈화 했습니다.

 

일본 북부 한 농촌 마을에서 모자가 같은 날 사망했습니다. 91세 홀어머니를 모시는 64세 다케시씨는 마루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노환으로 침대에 누워서 지내던 사토 미쓰씨는 같은날 동사했습니다. 다케시는 전문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인근 축사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노모를 돌보는 효자 중 효자였습니다. 일하다가 집으로 뛰쳐들어 갈 수 있는 조건에 충족하는 직장을 만난 것을 일생의 행운으로 여겼어요. 효심은 역부족이었나요? 그가 급사한 날 노모는 아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기어갔지만 끝내 손을 맞잡지 못했습니다.

 

비극이지요. 하지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초고령화사회에서는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국가가 노인에 대한 서비스를 실패한 상황에선 일반적일 수도 있습니다. 90세가 넘었다면 요양시설에 입소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기술자가 자기 기술을 버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산업에서의 손실도 방지할 수 있었고요. 노모가 사회보장 사각에 있는데다 도우미를 고용하지 못할 정도로 수입이 낮으면 언제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죠. 죽음은 속도와 순서 차이일 뿐.

 

이 비극은 사실 일중독거의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자식이 일하는 동안은 독거노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돈이 없어 데이케어서비스를 받지 못하니 화장실 갈 때, 식사할 때, 창문 열 때까지 모든 순간 저승사자가 따라다닙니다. 노인에게 사고사는 케어해줄 여력이 가족, 사회에 모두 없을 때 일어나는 흔한 일입니다. 일중독거는 가족이 있어도, 세대를 합쳐도 비극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고령화사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가족 자체가 리스크입니다. 히키코모리를 키우는 가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부모가 일이 있고 장년일 때는 가족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있어도 부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가 은퇴하고 나면 가족 모두가 실업자가 되는거죠. 훨씬 줄어든 수입으로 연명해야 합니다. 마흔 줄에 오른 은둔형 외톨이에게 취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도 해고된 다음에서는 취업하기 힘든데 히키코모리에겐 기회가 없을거에요. 친자파산이 아주 가깝습니다. 이런 가정은 바깥에서 돕기도 힘듭니다. 자식의 일을 바깥에 알리지 않는데다, 아무 사건이 없어 외견상 문제가 전혀 없어보이기 때문입니다.

 

히키코모리가 아니어도 자녀가 30,40대 실업자라면 친자파산에 가까워집니다. 2012년 장년 미혼자 수가 305만명, 35~44세 인구의 16.1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아주 높은 수치입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가족구조라는 뜻입니다. 1980년에 비해 8배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부모와 동거하는 장년 미혼자 완전 실업율은 10.4퍼센트입니다. 같은 세대 실업율에 비해 두배가 넘습니다. 일을 한 번도 안했던 경력이 단절되었든 실업이 장기로 이어진다면 친자파산할 것입니다.

 

일이 있다해도 자녀가 워킹푸어라면 친자파산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나라와 회사 양쪽에서 연금을 받더라도 자녀가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면 결국 망할 겁니다. 일본은 1993년보다 2013년 실질 임금이 더 낮습니다. 40%가 넘는 비정규직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인구는 감소추세고 사회보장비는 더 많이 필요하겠지요. 여기에 안 그래도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아베 정부에서 더 늘어났습니다. 아베 정권에서 일본 기업이 거둔 높은 수익은 노동자를 한번 더 쥐어짠 결과입니다. 쥐어짠 결과는 친자파산의 일상화로 나타날 것입니다.

 

함께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대분리 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으면 생활보호 대상자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크나큰 모순이죠. 가족이 복지시스템에 들어서기 전까지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라는 일본 정부가 실은 가족이 떨어져 살도록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면서 문화적으로는 세대분리한 노인이라도 계속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효프레임으로 압박하고 있으니까요. “성실히 일해 가정을 일구면 노후에는 검소하지만 가족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전후세대는 믿어왔습니다. 믿음은 자주 배신합니다.

 

미래를 보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방을 가면 됩니다. 이 책이 일본 북부 삿포로 지방을 주로 취재했어요. 지방은 일자리가 없으니 더 많은 파산으로 이어지겠지요. 지방은 안그래도 부족한 일자리는 역류현상으로 더 말라갔습니다. 젊었을 때 도시로 나간 40~50대 중장년에 일자리를 잃고 부모 곁으로 돌아오는 역류현상이 더해졌습니다. 귀향은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노후파산과 친자파산은 가계재정이 아무리 줄여도 의료서비스와 요양서비스를받기 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핵심이지요. 가계부를 정리하다 앞으로 십만원대 적자가 난다는 계산에 다다르면 케어서비스를 가족은 자신들이 책임진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태도가 상황을 반전 시키지는 못합니다. 가족이 떠안을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한데 비장한 각오로 임한다해서 해결이 될까요? 전문가의 일을 비전문가가 맡으면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지는 겁니다.

 

가난은 가족 단위에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가난한 가정은 파산합니다. 당장은 가난하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고 수입이 줄면 결국 파산합니다. 요양서비스도 못받는데다 헐 벗고 굶주린데다 어둠 속에서 지내야하는 노인과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업국에서 인간의 기본권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모순에 바로 사회가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표현 보다 적절한 것이 있을까요?

 

일본은 준비를 했는데도 막상 현실에서 벌어지니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나요? 한국은 일본처럼 해외에 묻어둔 자산이라도 있나요? 2019년 전 세대 중 40대에 유일하게 고용율이 하락했습니다. 곧 비가 내리겠군요. 멈추지 않는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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